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.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,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.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잭슨 민주주의 (문단 편집) === 엽관제 === [[행정학과]]나 기타 다른 학과에서 [[행정학]]을 공부하다 보면 빠지지 않고 거의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. 앤드루 잭슨은 취임 후 [[엽관주의|엽관제]]를 이용해 자신의 측근과 지지자들을 일선 관료로 대거 등용했다. 물론 반대파들은 이를 무능한 이들의 자리 나눠먹기, [[키친 캐비닛]]이라 부르며 비판했다. 하지만 잭슨과 이른바 잭슨 민주주의파들은 당시 폐쇄적이고 정부 말도 잘 안듣던 혹은 무시하던 엘리트 관료 사회에 변화를 주기 위해 엽관제를 적극 활용했다. 사실 이 부분은 지금도 [[갑론을박]]이 이어지는 문제이다. 엽관제의 부정적인 면은 이미 현대 들어 많이 부각되어있지만, 옹호론자들은 당시의 [[관료제]] 시스템은 일정 수준 이상의 교육과 재산이 없으면 관직에 나갈 길이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정무직을 선출하는 선거법의 개정과 같은 맥락에서 볼 수도 있다고 말한다. 엽관제의 기반이 되는 4년 임기제는 조지 워싱턴 시기부터 존재하는 제도였다. 그런데 왜 앤드루 잭슨 시대에 엽관제가 두드러지냐면, 이전에는 주로 동부의 상류층에서만 관료가 나왔기 때문이었다. 연방주의건 공화주의건 결국 동부 지방 상류층이라는 좁은 리그에서 움직였기 때문에 인재 풀에 한계가 있었던 것이다. 그걸 당시 정계의 [[아웃사이더]]로 새로운 지지층이 필요했던 잭슨이 [[서부]] 개척민들에게 확대한 결과, 선거를 도운 중하류층 출신들도 정계의 중심부에 진입할 수 있었던 것. 덕분에 이후 미국 정치의 판도가 동부 중심 일변도를 벗어날 수 있었고, 이런 정치적 기반 때문에 앤드루 잭슨은 퇴임 후에도 상당히 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다. 물론 [[엽관제]]도 관료의 전문성 하락과 부패 등의 문제점이 있고, 미국의 [[행정학]]을 창시했다고 볼 수 있는 [[우드로 윌슨]]이 이를 지적하면서[* 윌슨은 행정은 정치와는 완전 별개인 '경영(Business)'의 영역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.] 20세기 이후 엽관제는 단점이 더 강조된다. 그러나 엽관제는 관료제의 민주성을 확대한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으며 현재도 정무직 지명직의 자리에는 엽관 임용이 이루어지는 등 필요불가결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. [[파일:앤드루잭슨.jpg]] 만화 [[먼나라 이웃나라]] 미국편에서도 엽관제와 [[대중주의]]를 이유로 잭슨을 비판했지만, 잭슨 시대의 엽관제가 가진 순기능 및 시대적 맥락을 아예 무시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.현재도 직업공무원제의 기반에 엽관제적 요소를 어떻게 결합시켜서 행정의 민주성을 이룩할 것인가라는 것은 현대 행정에서 여전히 주요한 화두 중 하나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